첫 번째 아이디어가 시작도 전에 죽었다
서버를 결제하고 도메인을 사고 나서, 정작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데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. 첫 번째 계획은 코드를 한 줄도 쓰기 전에 폐기했습니다.
원래 계획
인기 있는 장소에 대해 더 많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만들 생각이었습니다.
인스타그램에 뜨는 카페나 식당을 검색하면 사진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정보가 없습니다. 웨이팅은 얼마나 되는지, 주차는 어디에 하는지,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지. 이런 걸 한곳에 모아서 보여주면 쓸모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.
목표는 월 500만 원 애드센스 수익이었습니다. 지금 다시 적으니 민망합니다.
왜 죽었나
정보를 모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. 문제는 하나였습니다.
가보지 않은 곳을 소개할 수 있는가.
구글이 콘텐츠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E-E-A-T라는 걸 씁니다. Experience(경험), Expertise(전문성), Authoritativeness(권위), Trustworthiness(신뢰성)의 약자인데, 맨 앞에 있는 게 경험입니다. 그리고 2024년에 나온 scaled content abuse 정책은 여러 출처에서 긁어모아 재조합한 콘텐츠를 직접 겨냥합니다.
제가 만들려던 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. 블로그 후기와 지도 리뷰를 모아서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. 정성껏 만들어도 제가 직접 가본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.
그럼 직접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, 그게 안 됩니다. 야근이 일상이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상황이었습니다. 퇴근하면 대부분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뒤입니다. 한 달에 두세 곳 다녀와서 글을 쓴다고 해도, 그런 사이트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.
여기서 든 의문
AI한테 어떤 장소를 물어보면 이런 정보를 다 대답해 주고, 그 회사는 돈을 받는다. 왜 나는 안 되는 걸까?
솔직히 억울했습니다. 제가 하려던 것과 뭐가 다른가 싶었습니다.
생각해 보니 답은 규모와 책임이었습니다.
- AI는 정보를 답변으로 주고, 제 사이트는 정보를 페이지로 만들어 검색 결과에 올립니다. 검색 결과의 자리는 한정돼 있고, 구글은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해 훨씬 엄격합니다.
- AI를 서비스하는 회사는 틀렸을 때 책임을 지는 구조가 있고, 개인 사이트는 없습니다. "웨이팅 10분"이라고 적어둔 정보가 틀려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.
- 무엇보다, AI에게 물어보면 끝나는 일을 굳이 제 사이트에 와서 볼 이유가 없습니다. 이게 제일 컸습니다.
그래서 남긴 기준
아이디어를 접으면서 다음 후보를 고를 조건을 정했습니다.
- 제가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것 — 어딘가에서 모아온 게 아니라, 제가 계산하거나 구성해서 내놓는 것
- 발로 뛰지 않아도 되는 것 — 퇴근 후와 주말만으로 유지 가능해야 합니다
-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 — 검증할 수 없는 정보는 안 다룹니다
- 결제 모듈은 붙이지 않는다 — 개인이 결제를 다루기 시작하면 사이트가 아니라 사업이 됩니다
이 네 가지가 나중에 계산기로 이어집니다. 계산기는 제가 공식을 코드로 옮겨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고, 집에서 만들 수 있고, 무엇보다 맞는지 틀린지 검산이 됩니다.
돌아보면
코드를 한 줄도 안 쓰고 접은 게 이 프로젝트에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. 만들었으면 최소 두 달은 썼을 테고, 그 뒤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겁니다.
다만 하나는 짚어둡니다. 이때 저는 "무엇을 만들까"를 고민한 게 아니라 "무엇이 돈이 될까"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. 월 500만 원이라는 숫자가 먼저 있었고 아이템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중이었습니다. 이 순서는 뒤에서 한 번 더 저를 넘어뜨립니다.
이 글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쓰는 진행 중인 기록입니다. 지금의 판단이 나중에 틀린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.